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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어도 죽어도 하느님은 계신다  - 박 미카엘라

 

… “ 에휴… 답답하다. 어디 용한 데 없나? 난 왜 이렇게 안 풀려. 성당 다니면 뭐하나.

휴 ….”

네 의외의 말에 나는 “쓸데없는 생각과 경솔한 말 하지 말라”고 짧게 면박을 줬다.

그러자 너는 손사래 치며 말했지. “ 엄마, 그냥 해본 소리야. 나 점이나 사주팔자 볼 생각 없어. 어치피 맞지도 않아. 스무 살 초반에 친구들이랑 재미로 봤었는데, 점쟁이 말이 나보고 부모 복이 없다고 해서, ‘틀리구나’하고 생각했어.”...

 

… 엄마는 알다시피 네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세례받고 신앙생활하다가 결혼하게 됐다. 그런데 하필 시댁은 일 년에 한 번 꼭 재수굿(한 해의 운을 기원하는)을 하고 중요한 일이나 때마다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이는 집이었다.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재수굿이 벌어졌다. 갓 시집와 거절하지 못하고, 엄마는 시댁 어르신들이 시키는 대로 굿에 올림 떡을 준비했다.

 

그런데 속에서 갑자기 오기가 올라왔다. 나는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나의 하느님이 이기나네(귀신)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며 성호를 긋고 주모경을 외우면서 떡을 했다. 그렇지만 어른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굿판에 참여해야 했다. 무당이 이름을 부르며 종이에 불을 붙어 하늘로 올려보내는 순서였다. 솔솔 바람도 적당히 불고 집안사람들 것 하나둘 다 순조롭게(?)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드디어 내 이름과 네 아빠 이름을 부르며 종이를 태워 올리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것은 다시 몇 번을 올려도 누가 일부러 잡아 끄는 것처럼 계속 땅에 떨어졌다. 시댁 어르신들도 당황했지만 제일 당황한 사람은 무당이었다.

 

기도하고 덤빈 것은 나인데 아빠 것까지 왜 그랬을까? 아마 네 아빠도 몇 년 뒤에 세례받고 성실하게 신앙생활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막아주셨구나라고 생각해 본다. 그 뒤 그 집안에서 유일하게 우리 부부만 굿판에서 빠지게 되고 미신에 아예 눈길을 돌리지 않게 되었다.

 

네 큰언니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우리 부부는 너희를 데리고 맨주먹으로 서울에 상경했다. 월세방이지만 감사한 건, 성당이 집에서 5분 거리여서 성체를 매주 모실 수 있다는 거었다. 그렇지만 네 아빠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농사만 짓던 사람이라 기술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막노동뿐이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등 하늘이 허락한 날만 쉴 수 있던 아빠는 주일을 지킬 수 없었다. 그래도 대축일 미사는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마음속에서 신앙을 놓지 않았다. 다행이 월세에서 전세로 돌려 돈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다. 그 집에서 얼마 못 지내고 일이 일어났다. 1995년 겨울, 네 아빠가 몸이 좀 안 좋아 병원에 가니 암이었다. 병원에서는 수술도 할 수 없다고했다. 몇 개월만 남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아무리 가망 없는 상황이라지만 하느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어 조금이라도 호전돼 수술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네 아빠와 같이 열심히 기도하고 치료받았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 보험도 들어놓지 못한 터라 병원비가 급했다. 전세금을

빼고, 다시 시골에 내려가 농사지으려고 남겨둔 작은 땅을 헐값에 팔았다.

 

그러나 점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때 친적 중에 한 분이 문병을 왔다. 와서는, 조상의 묏자리가 좋지 않으니 이장을 하면 병이 낫고 후손이 잘 될 거라고 하더라. 그때 왜일까? 시집와서 재수굿 떡을 하면서 올라왔던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 자신도 놀랄 단호한 어조로 친척에게 말했다. “저희는 죽더라도 하느님, 살더라도 하느님입니다.”

 

친척이 혹여나 민망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친척이 돌아간 뒤 혹시 네 아빠가 그런 제안을 듣고 약해진 마음에 섭섭해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물어봤더니“나도 같은 마음이야”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 참 소중한 당신 - 10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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